"그만 좀 따라오지? 벌써 세 시간째다."
"세상을 멸망시킬 힘을 품고도 그렇게 태평하게 말씀하시다니, 정말 무책임하시군요."
강진혁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. 낡은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가 숨을 헐떡이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.
은퇴한 용병으로서 그가 바랐던 것은 단 하나였다. 적당한 시골 마을에 자리를 잡고,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따뜻한 수프와 딱딱하지 않은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것.
하지만 세상은 그 소박한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.
"무책임이라. 내 의지로 얻은 힘도 아닌데 그런 소릴 들으니 억울하군."
"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, 당신이 딛는 땅은 죽어가고 있습니다. 그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으신가요?"
여자의 말대로 진혁이 서 있는 발밑의 풀들은 이미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.'파멸의 혈통'. 그 거창하고도 저주스러운 이름이 각성한 이후로 그가 머무는 곳마다 생명력은 증발했다.
주변 환경을 영구적으로 황폐화시키는 힘. 그것이 진혁의 몸 안에서 들끓고 있었다.
"그래서, 성녀님께서는 이 재앙 덩어리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지? 여기서 나를 정화라도 해서 없애버릴 건가?"